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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가녀장의 시대를 읽고.

by 이것저것 인간 2023. 3. 17.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라는 책을 읽었다. 

 

1. 김숙의 가모장, 이슬아의 가녀장. 

코미디언 김숙 님이 "가모장"이라는 단어를 처음 썼을 때 

낯설고도 짜릿했다. 

"가부장"이라는 단어에서 딱 한 글자 달라졌는데

굉장히 낯선 단어가 되었다. 

 

가모장이라는 단어가 익숙해 질 즈음에

갑자기 "가녀장"이라는 타이틀의 책을 발견해서

흥미가 동하였다. 

 

2. 내 안의 유교걸

이 책을 읽었을 때 처음 느낀 감정은 이것이었다. 

 

불편하다

 

 

 

정말 불편하게 하는 책이다. 

 

내 뼛속까지 스며있는 유교사상(사실 이런 것들이 진짜 유교사상인지도 모르겠지만.)

힘들다고 비명을 지르는 느낌이었다.

 

사실 왜 불편했냐고 물으면

명쾌하게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무엇이 불편했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 불편하다고 하겠다. 

 

  • 딸이 회사(출판사) 대표이고, 부모님이 직원인 것
  • 진짜로 딸이 부모님을 "부하직원"처럼 부리는 것
  • 부모님도 딸을 "대표님"으로 모시는 것
  • 부모님이 딸에게 "대표님"이라며 존대하는 것
  • 전망좋은 방은 딸이 사용하고, 부모님은 지하실을 사용하는 것
  • 딸은 집/차 아무데서나 담배를 필 수 있지만, 아버지는 밖에서 펴야 하는 것
  • (우스갯소리라도) 부모님께 여차하면 쫒아낼 것이라고 하는 것 
  •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부모님 존함을 친구처럼(웅이, 복희) 부르는 것

한 마디로

내가 알던 상하관계가 뒤집힌 것이 불편하다는 말. 

 

그리고 이슬아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어서 그런지

(실제로 이슬아 작가는 출판사 대표이며, 작가님의 부모님께서 직원으로 계심)

무의식중에 이 모든 것이 진짜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점이다. 

 

 

3. 이러한 불편함은 정당한가? 

만약 이러한 불편함이 정당하냐고 싸움을 건다면

나는 이길 자신이 없다. 

하나하나 따지고 본다면야

가녀장이 딱히 잘못한 것도 무례한 것도 없으니까. 

 

  • 실제로 가녀장은 가세를 일으킨 장본인이며
  • 부모의 주거와 생계를 오롯이 혼자 책임지고 있고,
  • 부모님의 노동에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으며 
  • 대표-직원의 관계는 업무시간에만 해당되며
  • 부모님의 건강과 행복을 덤덤하지만 알뜰하게 챙기는 딸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모님의 노동력(가사나 육아 같은)을 공짜로 누리면서

딱히 부모님께 뭘 해 드린 적도 없는 (나같은) 인간이 불효자이고

 

열심히 일한 돈으로 집사고 회사세워서

부모님을 봉양하는 작가님이 훨씬 더 효자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정당하느냐와는 관계 없이

불편한 것은 나도 어쩔수 없는 현상이다. 

 

4.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작가의 의도인지도. 

어쩌면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작가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지대넓얕의 작가인 채사장도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을 읽으라고 했으니까.) 

 

"가부장"이라는 단어 대신 "가녀장"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부모"라는 단어 대신 "모부"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어서

그 불편함의 원천을 찾아가게 만드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5. 책 보다는 작가. 

잘 읽혔고, 나쁘지 않았고, 읽는 데 들이 시간이 많이 아깝지는 않은 책이었다. 

하지만 이슬아 작가의 책이 아니었다면(즉,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 아니었다면)

나에게는 이 정도의 매력조차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슬아 작가 자체의 매력과, 

그녀가 살아온 인생(월간 이슬아, 헤엄출판사처럼 알려진 것에 한하지만.)을 고려한다면

흥미롭게 읽을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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